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뤼순 공방전 (문단 편집) === 1차 총공세(1904.8.19 ~ 24) === 일본군은 총공세 직전인 8월 16일, 뤼순 요새의 무혈 인도와 주민들의 철수를 제안하는 최후 통첩을 보낸 바 있다. 이는 다음 날 러시아군에 의해 반려되었으며, 직후 일본군은 총공격명령을 하달하였다. 총공격 개시일은 8월 18일로 예정되었으나 비로 인해 땅이 질퍽해지자 하루 연기되었다. 노기 마레스케 제3군 사령관은 19일 새벽 외국의 종군기자들과 접견한 자리에서 자신만만하게 뤼순항을 조기에 함락시킬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일본군 지휘부가 마련한 전반적인 공격 계획은 8월 19일부터 전 전선에 대해 포격, 이후 포격 지원 하에서 서부전선의 전진기지에 대한 양동공격을 가하여 시선을 끌고 8월 21일 새벽에 주력부대를 동원하여 동부전선을 공격한다는 것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이 공격의 성공을 위해 예비대인 제4예비여단을 제외한 전 병력(이당시 약 5만 1천여)를 공격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일본군의 포격과 전 전선에 걸친 양동공격은 19일에 이루어졌다. 대정자산(大頂子山)을 비롯한 서북면의 주요 러시아군 전진 진지들은 일부는 함락되었고 일부는 버텨냈다. 또한 동부전선에는 집중적인 포격을 가해 주요 방어시설을 파괴하여 추후 주력부대의 공격을 준비하였다. 일본군 주력군의 공세는 21일 새벽에 실시되었다. 특히 중점을 둔 곳은 양동공격의 결과 어느정도 성과를 올렸던 판룽산(盤竜山) 다면보루였다. 일본군은 동부의 방어라인을 돌파하여 한 번에 전투를 끝낼 생각을 했고, 실제로 22일까지는 어느정도 성과를 올리는 데에도 성공했으나 러시아 측 역시 예비대를 집중시켜 이를 막아냈으며, 23일에 일본군 4개 여단을 투입한 공격이 격퇴당하자 노기 장군은 24일 공격을 취소하고 확보한 진지들의 방어선을 굳히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8월 30일에는 역으로 러시아군의 판룽산 탈환 시도가 있었으나 이는 격퇴되었다. 1차 총공세에서 일본군은 전사 5,017명, 부상 10,843명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는데, 이는 사실상 한 개 사단이 괴멸당한 거나 다름없는 큰 피해였다. 그리고 그런 피해를 올리면서 겨둔 성과는 대정자산과 판룽산 고지의 장악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좁은 곳에 과도하게 병력을 집중시켰다가 큰 타격을 받은 것 등 여러 실책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잘 무장된 요새를 단기간의 총공세로 함락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계획이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러시아군은 사상자, 부상자 도합 6천에서 7천 정도의 사상자를 냈다. 이후 러시아군은 1차 총공세를 방어한 후 방어력을 회복하는 데 전력을 다했으며, 또한 다롄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함대가 있는 한 함대단위로 뤼순을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함선을 얕은 여울쪽으로 붙여 포격으로 연안의 방어를 지원하고 함선의 포와 상당수 해군 병사들을 육군에 지원하며 뤼순의 방어를 지원하도록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